가만히 바라본다는 것의 어려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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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만히 바라본다는 것의 어려움
관찰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다
발달장애 아동을 이해한다는 말은 자주 쓰이지만, 실제로 그 아이를 안다는 일은 정보를 많이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. 가만히 보면 알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. 무엇을 좋아하는지, 왜 우는지,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. 집중해서 관찰하다 보면 백 퍼센트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은 보이기 시작한다. 심지어 그 순간에는 알지 못해도, 하루가 지나고 나서 이유가 또렷해지는 경우도 있다.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. 알기 위해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려는 태도다.
멈춤이 어려운 이유
하지만 그 멈춤은 말처럼 쉽지 않다. 아이는 울고, 상황은 급박하며, 부모는 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서 있다. 울음을 멈추게 해야 하고, 주변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며, 지금 당장의 답을 요구받는다. 그 안에서 관찰은 늘 늦고 비효율적인 선택처럼 보인다. 그래서 “아, 또 우네”라는 말이 먼저 나오고, “이거일까, 저거일까” 하며 가능한 원인을 빠르게 나열하게 된다. 이는 무책임해서가 아니라, 하루를 버티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에 가깝다.
알 수 없는 고통의 영역
물론 정말로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. 장 문제나 곰팡이균으로 인한 복통처럼, 아이가 표현하지 않는 이상 파악하기 어려운 고통도 존재한다. 모든 울음에 명확한 이유를 부여할 수는 없다. 그렇다고 해서 관찰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. 오히려 그 한계를 인정할 때,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진다. 관찰은 모든 답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, 질문의 범위를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.
고치지 않고 바라볼 때 생기는 변화
아이의 짜증, 울음, 혹은 유난히 밝아 보이는 순간을 고치려 들지 않고 바라보기 시작할 때 관계의 방향은 달라진다. 해결보다 이해가 앞서고, 통제보다 맥락이 먼저 보인다. 그렇게 쌓인 시간 속에서 부모는 어느새 그 아이에 대한 가장 깊은 전문가가 된다. 교과서로 배운 전문성이 아니라, 반복된 관찰과 실패, 그리고 다시 바라봄을 통해 형성된 이해다. 이 이해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것과 원하는 것을 조금씩 넓혀 준다. 사회성은 훈련으로 주입되는 기술이 아니라, 이해받는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란다.
짧은 멈춤이 만드는 힘
가만히 멈춰 서서 바라보는 노력은 대단히 어렵다. 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유의 문제이고,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아이를 바꾸려 하지 않고 바라본 순간이 있다면, 그것으로 충분하다. 그 짧은 멈춤이 쌓여 아이를 이해하게 만들고, 결국 부모 자신도 조금 덜 흔들리게 한다. 조용히, 그러나 분명하게.
References
- https://www.cdc.gov/ncbddd/autism/facts.html
- https://www.understood.org/en/articles/understanding-behavior-as-communication
- https://www.autismspeaks.org/behavior-and-communication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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